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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화유산 동구릉

by 오늘도최선을 2015. 5.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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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화유산 동구릉(東九陵)

 

 

 

동구릉은 경기도 구리시에 있는 조선시대의 왕릉군으로, 사적 제193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191만 5891㎡에 달하는 구역에는 9개의 능에 17위의 유택이 있고, 2009년 2월 27일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1408년(태종 8년) 5월에 태조가 승하한 뒤 지관과 대신들이 한양 주변 지역의 명당을 찾던 중 좌의정 하륜의 천거로 양주의 검암으로 정하였고, 그 해 9월 9일에 건원릉이란 이름으로 봉릉되었다. 그 뒤 현릉과 목릉, 숭릉, 휘릉, 원릉, 경릉 등이 조영되면서 이들을 동오릉, 동칠릉 이란 이름으로 불렀다. 그 뒤 1855년(철종 6년)에 양주 용마산에 위치해 있었던 추존 문조의 수릉을 동칠릉으로 천릉하면서 오늘날의 동구릉을 형성하게 되었다.

 

♣ 조선왕릉 분포도

 

 

 

▣ 수릉(綏陵)

수릉은 조선의 24대 왕 헌종의 아버지인 추존왕 문조(1809~1830)와 신정왕후 조씨(1808~1890)의 합장릉이다.

문조는 23대 왕 순조의 맏아들로 효명세자 시절 대리청정을 하면서 인재를 널리 등용하고 형벌을 신중히 하는 등 백성을 위한 정책을 시행하였다. 처음에 의릉 왼쪽 언덕에 장사했다가 풍수 농의가 있어 1855년 철종 때 이곳으로 옮겼다. 헌종이 왕위에 오르자 익종으로 추존되었다가 대한제국 광무3년(1899)에 다시 문조황제가 되었다.

신정황후는 헌종의 대비가 되었고 철종 때 대왕대비가 되어 수렴청정을 하면서 안동김씨의 세력을 약화시키고 고종을 왕위의 자리에 앉혔다.

 

 

 

 

▣ 현(顯陵)

현릉은 조선 제5대 임금 문종(文宗: 1414~1452, 재위 1450~1452)과 현덕왕후 권씨(1418~1441)의 능으로 동원이강릉이다. 문종은 세종의 맏아들로 세종의 훈민정음 창제를 도왔으며, 재위 3년 동안 고려사와 고려사절요를 편찬하고 군사제도를 정비했다. 현덕왕후는 권전의 딸로 왕비가 되기 전에 단종을 낳은 후 곧 세상을 떠나 경기도 안산에 안장되었다. 이후 문종 즉위년에 소릉으로 격상하였으나 단종의 복위사건으로 세조가 다른 곳으로 옮겼다가 중종 8년(1513)에 이곳으로 옮겨 조성했다. 서쪽이 왕릉이고, 동쪽이 왕비릉이다.

 

 

 

 

 

▣ 목릉(穆陵)

목릉은 조선의 14대 선조(1552~1608)와 원비 의인왕후(1555~1600) 박씨, 계비 인목왕후(1584~1632) 김씨의 능이다. 서쪽 능침이 선조, 가운데 능침이 의인왕후, 동쪽의 능침이 인목왕후의 능이다. 같은 주산에서 내려온 능선에 각각 봉분을 만든 동원이강형 능이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승리로 이끌어 선조라는 문호를 받았으며 이 시대에는 훌륭한 인재들이 많이 배출되어 목릉성세라고 일컬어졌다.

선조의 능침은 문.무석인의 규모가 크고 조각의 윤곽이 뚜렷한 점이 특이하다. 또한 각 능침에서 정자각 신문으로 이어지는 신도의 모습도 독특하다.

 

 

 

 

 

 

 

 

 

▣ 건원릉(健元陵) 

건원릉은 조선 1대 태조의 능으로, 조선 왕릉 제도의 표본이라고 할 수 있다. 기본 능제는 전체적으로 고려 공민왕의 현릉을 따르고 있으나, 고려 시대에는 없던 곡장을 봉분 주위에 두르는 등 세부적으로 석물의 조형과 배치 면에서 일정한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석물의 조형은 남송 말기의 중국풍을 거의 따르고 있다.

봉분에는 다른 왕릉들처럼 잔디를 심지 않고 억새풀을 덮었는데, 고향을 그리워하는 태조를 위해 태종이 고향에서 흙과 억새를 가져다 덮어주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높고 웅장한 봉분의 아래 부분은 다양한 문양을 새긴 12면의 화강암 병풍석이 둘러싸고 있다. 병풍석에는 열 두 방향의 악재로부터 왕릉을 보호하기 위해 십이지신상을 새겼다. 병풍석 밖으로는 12칸의 난간석을 둘렀고, 난간석 밖으로는 석호와 석양이 네 마리씩 교대로 배치되어 있다. 석호와 석양은 왕을 지키는 영물들로, 밖을 향하여 언제든지 방비할 수 있는 준비 태세를 갖추고 있다.

 

 

 

 

▣ 휘릉(徽陵) 

휘릉은 조선의 16대왕 인조의 계비 장렬왕후 조씨(1624~1688)의 능이다. 장렬왕후는 효종,현종,숙종 때까지 4대에 걸쳐 왕실의 어른으로 지냈는데, 후사가 없었다.

장렬왕후의 사후, 이 시기의 극심했던 붕당정치는 복상 문제를 놓고서 또다시 치열하게 대립하였다.

휘릉은 단릉으로 배면의 담은 약간씩 높이가 다른 나직한 형태로 자연 경관에 어울리게 되어 있다. 문.무석인, 석상 등 석물은 1684년에 조영된 숭릉의 것과 비슷하며, 정자각은 맞배지붕으로 익랑을 덧붙인 것이 특이하다.

 

 

 

▣ 원릉(元陵) 

원릉은 조선의 21대 왕 영조(1694~1776)와 계비 정순왕후 김씨(1745~1806)의 쌍릉이다. 영조는 52년의 재위 기간 동안 탕평책, 균역법 등 많은 업적을 이루었지만 아들 사도세자가 붕당정치의 희생자가 되는 비운을 겪기도 하였다.

13세에 영조의 계비가 된 정순왕후는 사도세자의 죽음에 빌미를 제공하였고 어린 순조가 즉위하자 수렴청정을 하였다.

 

 

 

▣ 경릉(景陵) 

경릉은 조선의 24대 왕 헌종(1827~1849)과 원비 효현왕후 김씨(1828~1843), 계후 효정왕후 홍씨(1831~1904)를 함께 모신 능으로 조선시대의 유일한 삼연릉이다.

헌종은 8세의 어린 나이에 즉위하여 대왕대비 순원왕후 김씨가 수렴청정을 하였다. 헌종은 학문을 좋아하고 글씨를 잘 썼으나 수렴청정으로 인한 안동 김씨의 세도정치로 어려움을 겪었다.

후사가 없어서 강화도령으로 알려진 철종이 뒤를 이었다.

경릉은 삼연릉이나 단릉 형식의 석물 배치를 보이며 병풍석은 없고 난간석이 설치되어 있다.

 

 

▣ 혜릉(惠陵) 

혜릉은 조선의 20대 왕 경종의 원비 단의왕후 심씨(1686~1718)를 모신 단릉이다. 단의왕후는 숙종 44년 승하하여 이곳에 세자빈의 묘로 모셔졌다가 1720년 경종이 즉위하자 왕후로 추존되었고 능호를 혜릉으로 하였다.

단의왕후는 총명하고 덕을 갖추어 어린 나이에도 대왕대비와 병약한 경종(당시 세자)을 잘 보필하였다.

혜릉의 석물은 숙종과 계비 인현황후의 명릉의 제도를 따라 만들어져 문석인과 무석인이 사람과 같은 크기의 사실적인 묘사로 된 것이 특징이다.

 

 

▣ 숭릉(綏陵) 

숭릉은 조선의 18대 왕 현종(1641~1674)과 원비 명성왕후 김씨(1642~1683)를 모신 쌍릉이다.

현종은 예론을 둘러싼 정쟁에 시달렸으나 조선 왕조의 질서를 확립하였으며, 북벌계획을 중단하고 훈련별대를 창설하는 등 군비 증강에 힘썼다. 또한 국가재정을 안정시키기 위해 대동법을 실시하였고 동철활자를 주조하였다.

숭릉의 정자각은 팔작지붕으로 다른 능에서 볼 수 없는 특이한 형태로 정면 3간, 측면 2간에 익랑이 붙어 있다.

 

 

동구릉의 숲길

대한민국 최대의 왕릉군인 동구릉은 왕릉에 들어가는 입구와 그 사이사이로 많은 숲길이 있다. 평범해보이는 매표소와 홍살문으로 지나 갈참나무와 소나무로 이루어진 숲을 지나가면 재실이 나타나는데, 이곳에 9곳의 왕릉으로 가는 갈림길들이 있다. 9기나 되는 왕릉의 사이사이를 연결하는 순환로를 그대로 따라 돌기만 해도 1~2 시간 정도 삼림욕을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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